연일 아동 성폭력 사건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성폭력 사례들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성폭력이 일어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도시가 양극화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깊어지고, 상업주의가 만연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고 하면, 불편하다고 하여 외면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 그림책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경고합니다. 사실 아이에게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은 몹시 어렵지만 말이에요. 아직은 세상의 좋은 것만을 보여 주고 싶을 때, 벌써 그 이면에 대해 들려줘야 하는지 고민되지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라면 사실을 전달하기에 좋은 방법을 찾아서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미리 도와주는 편이 현명합니다. 아이의 경험과 연령에 따라서 달라질 일입니다만,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성과 폭력에 대한 대화에 물꼬를 트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발전하는 사회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충분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수상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바라본 성폭력의 현실, 현대판 ‘빨간 모자’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봄직한 옛이야기로, ‘빨간 모자’가 있습니다. 비단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이 독자 또한 어느 정도 연령이 되면 다양한 옛이야기를 섭렵하는 가운데, 빨간 모자 이야기를 거칩니다. 대부분은 늑대에게 잡아먹힌 할머니와 소녀가 사냥꾼에게 구제되는 그림형제 판본입니다.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나서 사냥꾼이라는 구원자 없이 마치는 샤를 페로 판본은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권선징악을 강조하거나 혹은 탈피하며, 청사진을 담거나 혹은 가감 없이 현실을 담아내며, 그렇게 ‘빨간 모자’는 영화로, 소설로, 애니메이션으로, 그림책으로 다양한 층위의 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책에서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빨간 모자’의 시공간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 옮겨다 놓습니다. 2008년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며 이미 세계적인 화가로 입지를 굳힌 인노첸티는 전쟁의 참상과(『백장미』 『에리카 이야기』), 역사 속의 인간(『그 집 이야기』), 상상력에 대한 풍자(『마지막 휴양지』)와 같은 뚜렷한 주제의식을 그림책 속에 담아온 바 있습니다. 이 그림책 역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빨간 모자’ 이야기를 통해서 ‘아동 성폭력’이라는 현실에 밀착한 주제를 다루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외면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디서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할까? 빨간 모자는 구출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원하는 건 단연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은 지금 어떠한가? 왜 ‘빨간 모자’는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림책의 무대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와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 숲으로, 그 옛날 빨간 모자가 지나던 숲과는 거리가 멉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번화가와 뒷골목이 그림책의 중심 무대입니다. 이 그림책의 ‘빨간 모자’, 소피아는 낡고 허름한 변두리 아파트에 사는 소녀로, 아픈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챙겨다 드리려고 합니다. 화면의 앵글 안에는 위아래 칸칸이 아홉 집의 일상이 담겨 있고 사람들은 무심히 볼일을 보고 있습니다. 아랫집에 도둑이 든 것 같지만, 누구 하나 알아채지 못합니다. 글은 ‘다들 그럭저럭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림은 이처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의 현실을 짚어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소피아는 변두리 아파트를 떠나 엄마의 말씀대로 큰길을 따라 걷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번화가에 들어온 이상, 소피아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란한 광고판과 성적인 이미지를 드러낸 간판들,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와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 넘쳐나는 상표와 화려한 물건들. 소피아는 어지러운 쇼핑몰에서 출구를 잘못 찾고 길을 잃습니다. 비단 소피아만의 이야기일까? 영어와 일어와 이태리어와 중국어, 프랑스어가 뒤섞인 상표들은 자국의 상품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습니다. 이는 또한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번화가의 풍경임을 상징합니다. 이 화려한 쇼핑몰에서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의 욕구를 채우느라 급급합니다. 어린애 하나가 길을 잃었다고 도와줄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혹 누군가 친절을 보여준다면, 그건 믿을 만할까? 뒷골목 출구로 잘못 나온 소피아에게 웬 사냥꾼 같은 남자가 나타납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불량배들을 해치워 줬으니, 소피아 입장에서는 고마운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림엔 ‘DANGER"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남자는 늑대로부터 빨간 모자를 구출한 옛이야기의 그 사냥꾼이 아닌가? 그럼 이제부터 소피아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 그림책은 ‘겉 이야기’와 ‘속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그림책의 처음에서 내레이터인 인형 할머니는, 이야기가 마법 같은 거라고 말하면서 ‘속 이야기’인 소피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인노첸티와 프리시는 ‘성폭력의 현실’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아내면서, 서술의 양식에서나 그림의 표현에서 독자의 감정이입은 살리되, 몰입은 거리를 두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시각화를 덜어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이야기는 마법 같은 거라서 소피아의 이야기는 새드엔딩이 될 수도,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현실에 대입해 볼 때, 양극화된 도시와 사람들의 무관심, 현란한 성적 코드들이 가리키는 건 분명히 해피엔딩 쪽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는, 불편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할 때 연일 아동 성폭력 사건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성폭력 사례들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성폭력이 일어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도시가 양극화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깊어지고, 상업주의가 만연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고 하면, 불편하다고 하여 외면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 그림책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경고합니다. 사실 아이에게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은 몹시 어렵습니다. 아직은 세상의 좋은 것만을 보여 주고 싶을 때, 벌써 그 이면에 대해 들려줘야 할까? 하지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라면, 사실을 전달하기에 좋은 방법을 찾아서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미리 도와주는 편이 현명합니다. 아이의 경험과 연령에 따라서 달라질 일입니다만,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성과 폭력에 대한 대화에 물꼬를 트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발전하는 사회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충분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림책과 함께 증정하는 별책 『빨간 모자와 성폭력-그림책 깊이 읽기』에는,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씨의 칼럼, 그림책 깊이 읽기 도움글, 성폭력 관련 실질 정보가 풍성하게 담겨 있습니다.
1940년 2월 16일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의 작은 마을인 바뇨 아 리폴리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이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열세 살 때부터 제철소에서 일했으며, 열여덟 살에 예술학교에서 전혀 교육 받지 않았음에도 로마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플로렌스로 다시 돌아와 책 디자인을 시작했으며, 영화와 극장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2003년 라가치상을 받은 <마지막 휴양지>외에도 <흰 장미>, <호두까기 인형>, <크리스마스 캐롤>, <피노키오> 등이 있으며 BIB 황금사과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세밀화와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삽화로 유명하다.
< 2008 볼로냐 안데르센상 수상 후 인터뷰 >
이탈리아 그림책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68)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그림으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인노첸티의 작품은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에서도 『마지막 휴양지』 『신데렐라』 『호두까기 인형』(이상 비룡소), 『에리카 이야기』(마루벌), 『백장미』(아이세움) 등이 소개돼 부모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31일 권위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를 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나에게 그림은 상상력을 발휘해 나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도구”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어느 독자라도 책을 읽으면서 자기 나름의 상상을 펼치며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내 그림은 그런 수많은 상상의 결과물 중 한 예에 불과할 뿐 ‘정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꼽히는 그이지만 실제 모습은 아주 소탈했다. 전시장 통로에서 우연히 만나 불쑥 요청한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고, 꼬박 한 시간을 구석 의자에 앉아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로 질문에 답했다. 그는 “‘한국’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신선했다”며 “나는 내가 경험한 서구의 풍경과 문화만 그렸는데, 내겐 미지의 세계인 동양의 아이들이 내 그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언젠가 꼭 한번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쩌면 한국과 인연이 남다른 작가인지 모른다. 1992년부터 16년동안 일본 닛산 자동차가 맡았던 안데르센상 공식 후원사를 올해부터 한국의 남이섬이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이 후원하게 된 안데르센상의 첫 수상자가 바로 그인 것이다.
1940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열세 살 때부터 제철소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열여덟 살 때 로마로 이주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미술에 눈을 떴다. 하지만 그가 곧바로 창작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영화와 극장 포스터를 그리는 것이 그의 생업이었다. 그는 그 시기를 소중하게 기억한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계속 베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술공부가 됐다”는 것이다. 그가 밝힌 창작 원칙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즐겁게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왜 내 그림을 좋아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첫 작품은 1979년 완성한 『백장미』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에 희생되는 아이들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렸다. 출간은 85년에서야 이뤄졌다. 어둡고 슬픈 이야기라며 출판사들이 펴내기를 망설였기 때문이다. 인노첸티는 첫 책에선 글까지 썼지만 그 뒤로는 그림만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대학을 안 나와 글을 잘 못 쓰니까, 내가 써서 가도 결국 출판사에서 작가를 별도로 데리고 와서 새로 쓰게 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순수함과 자신감의 작가로 평가 받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그는 “요즘 아이들이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일본 에니메이션 등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마구 틀어주며 ‘나쁜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는 TV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