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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창창 피난길, 토담 밑 강냉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1950년 어느 봄날, 한 아이가 엄마와 형과 함께 집 모퉁이 토담 밑에 강냉이를 심습니다.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형은 구덩이를 파고 아이는 강냉이 알을 넣고 엄마는 흙을 덮습니다. 언제 싹이 날까, 틈날 때마다 토담 밑을 찾던 아이는 이윽고 강냉이 싹이 흙을 뚫고 뾰족 솟아나오자 무척이나 기뻐했을 겁니다. 한 치 크면 거름 주고, 두 치 크면 오줌 주고, 아이는 굵은 옥수수 주렁주렁 열릴 여름을 상상하며 춘궁기 허기진 하루하루를 견뎌 냈을 테지요. 그렇게 얼추 제 키만큼 자라 꽃을 피운 강냉이. 그 중 한 포기를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콕 점찍어 놓고, 열매 맺어 영글기를 기다리는데, 그만 전쟁이 터져 버립니다. 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인민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온 가족이 보따리를 싸 둘러업고 창창 멀고 먼 피난길에 오릅니다. 집 모퉁이 강냉이는, 얼마 뒤면 주린 배를 채워 줄 ‘내 강낭’이며 노란 병아리며 멍멍이는, 저만치 남겨 두고. “어여―” 피난민들이 웅기중기 모여 밤을 지새우는 어느 낯선 강가, 멀리서 들려오는 포탄소리에 여기저기 장탄식이 새어나오고, 엄마 아버지 밤별을 쳐다보며 고향집을 걱정할 적에, 아이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모퉁이 저만치 두고 온 강냉이 생각을 합니다. ‘지금쯤 수염 나고 알이 밸 텐데……’ 언젠가 포성 그치면 돌아갈 고향마을, 토담 및 강냉이는 아이의 바람대로 강냉이 알 옹글게 배고 있을까요? 두고 온 초가집은, 우물은, 마을 어귀 정자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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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보도자료

어린 권정생의 가슴에 남은 전쟁의 기억과 서정 이 그림책의 글은, 평생 작고 약한 이들을 위한 글을 쓰다가 이제는 별이 된 작가 권정생 선생이 초등학생 때 쓴 시입니다. 선생은 실제로 열세 살 초등학생 때 전쟁을 맞고 피난을 떠났으니, 이 시는 곧 그가 겪은 전쟁의 경험이며 가슴에 남은 하나의 기억이자 서정이겠지요.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지닌 것이 많은 어른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곧 생존의 몸부림이요, 그 서정은 상실의 공포일 것입니다. 목숨을 잃고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들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 어린 권정생 또한 당연하게도 두려움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입니다만, 더불어 그에게는 어른들과는 다른 동심의 서정이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심어 가꾼 강냉이 생각, 강냉이가 잘 자라고 있을까 하는 걱정과 거기 마음을 쏟으며 보낸 늦봄 한 시절의 그리움. 그러고 보면 어린 정생에게 강냉이는 단지 춘궁의 허기를 버티게 해 준 기대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어쩌면 일찍 세상을 떠난 목생이 형에 대한 그리움이며, 일본에 두고 온 두 형과 가난 때문에 헤어진 누이들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어린 시인은 당시 함께 지내지도 않던 ‘생야’-형을 이 시 속에 불러들여, 시에서만이라도 형제간의 정을 나누고자 했던 것일 테지요. 김환영의 그림으로 빚은 ‘평화 그림책’ 그 동심, 언제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고(산문집 『빌뱅이 언덕』 수록 「구릿빛 총탄이 날아오던 날」의 피난길 묘사) 살아남기 위해 서슴지 않고 남의 작물을 훔치는(장편소설 『초가집이 있던 마을』 속의 피난길 묘사)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인지쯤 샘지 나고 알이 밸’ 강냉이를 떠올리는 어린 마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사라져야 합니다. 혈육의 정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들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평화는 지켜져야 합니다. 그림책 『강냉이』는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바로 그러한 염원과 각오를 모아 함께 펴내는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화가이면서 동시집 『깜장 꽃』을 펴낸 시인이기도 한 김환영은 시 「강냉이」의 배경을 이루는 시공간과 짧은 시구의 행간에 배어 있는 ‘어린 마음’을 풍성한 붓질과 섬세한 색감으로 살려내어, 가난 속에도 설렘을 잃지 않고 두려운 가운데서도 그리움에 젖어드는 아이의 마음결에 독자의 마음을 선뜻 얹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떠올리는 희망 섞인 환상에 절망적 현실의 이미지를 대비시킴으로써, 전쟁의 참혹을 경계하는 일을 잊지 않지요. 그래야 어두운 현실을 바로 보는 이성의 힘으로 그 속에서 빛을 찾는 감성의 불씨를 피워낼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 장면의 코흘리개 아이가 응시하는 어둠 저 너머로, 반짝이는 별빛 같은 희망을 말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소개

자유로운 영혼을 담아 내는 그림 작가 김환영

1959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습니다. 1992년 첫 개인전 <벽+프로젝트> 전을 열었습니다. 그림을 그려 펴낸 어린이 책이 많습니다. 대표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종이밥』『나비를 잡는 아버지』『호랑이와 곶감』『해를 삼킨 아이들』을 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