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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40여 년 전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의 탁월한 색감과 현대적인 조형감각을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저자는 색을 분리하여 석판으로 찍어 낸 이미지 위에 따로 선을 그려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왁스나 스펀지, 덧칠하기 등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시각적 효과를 내기도 했지요. 이처럼 독특한 그만의 기법은 이른바 ‘키핑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그는 1967년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어렸을 때 살던 런던의 정겨운 모습이 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지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파라다이스 거리는 찰스 키핑의 어린 시절 런던 거리를 재현하는 것으로, 찰리와 샬럿, 그리고 금빛 카나리아가 함께 있던 공간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놀이터로, 재개발된 도시의 잃어버린 옛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몇십 년 전 도시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와 너무나도 닮아 있어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20160509_05_01.jpg 20160509_05_02.jpg 20160509_05_03.jpg 20160509_05_04.jpg

출판사 보도자료

대도시 런던에서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인 이야기 1967년, 찰스 키핑은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 Charley, Charlotte and the Golden Canary』를 출간합니다. 이 책을 출간한 옥스퍼드 출판사는 ‘도시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이해, 변해 가는 런던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키핑은 어렸을 때 살던 런던의 정겨운 모습이 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지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찰스 키핑은 런던의 램베스Lambeth 거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램베스 거리를 교차하는 또 하나의 거리로 올드 파라다이스 스트리트Old Paradise Street가 있었는데, 두 거리의 교차로에서 찰스 키핑의 할아버지인 잭 키핑Jack Keeping이 채소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키핑은 이 거리의 서정을 스케치에 담아내곤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떼어낼 수 없는 공간이었을 겁니다. 특히 키핑은 ‘파라다이스 거리(Old Paradise Street)’라는 이름의 이중적인 의미에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파라다이스’ 거리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지요. ‘죽으면 파라다이스로 간다’는 생각은 어린 키핑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같은 곳, 낙원(파라다이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그것이 비록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슬픔이나 우울, 고난 등의 제재들이 자연스럽게 다뤄지게 된 데에는 그의 이런 세계관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파라다이스’는 모종의 상징성과 유년의 기억을 담은 모습으로 찰스 키핑의 작품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책에서도 파라다이스 거리는 찰스 키핑의 어린 시절 런던 거리를 재현하는 것으로, 찰리와 샬럿, 그리고 금빛 카나리아가 함께 있던 공간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놀이터로, 재개발된 도시의 잃어버린 옛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지극히 현실적 화두를 담은 그림책 : 1967년의 키핑이 2010년을 사는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 도시화와 재개발 문제 찰리와 샬럿은 파라다이스 거리에서 함께 놀곤 했습니다. 거리에는 새를 파는 노점이 있었는데 꼭대기 새장에 있는 금빛 카나리아를 보며 노는 것을 특히 좋아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합니다. 철거 회사 사람들이 거리로 들이닥쳐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한 겁니다. 파라다이스 거리 1번지인 샬럿네 집이 첫 번째 차례였지요……. 키핑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 『낙원섬에서 생긴 일』, 『빈터의 서커스』, 『조지프의 마당』 등이 그러했고,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도 예외는 아니지요. 키핑은 이제 막 현대화, 도시화되기 시작한 런던, 당시 그 공간에서 느낀 것들을 그림책에 옮기고 있습니다. “몇몇 옛날 거리들이 살아남긴 했지만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거대하고 새로운 ‘유리 세계’로 바뀌었죠. 어마어마하게 높은 고층 아파트가 있었지만, 제가 느끼기엔 비인간적이고 차가웠죠. 밤에 불이 켜지면 정말 아름다웠지만, 거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찰스 키핑(더글라스 마틴, 『찰스 키핑,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키핑도, 키핑의 책 속 주인공 찰리와 샬럿도 옛날 집이 무너졌을 땐 과거의 일부가 사라진 느낌이었을 겁니다. 아슬아슬한 유리 빌딩이나 고층 아파트보다 반짝이는 돌계단이 그리웠을지 모릅니다. 누추했지만 풍성했던 옛날 거리가 좋았겠지요. 각별한 의미였을 겁니다. 이 이야기가 작가의 개인사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현대 사회의 아이들이야말로 끊임없는 개발 속에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공간이 지속되는 것을 보기가 어려울 겁니다. 무수한 개발 속에서 끊임없는 상실감을 겪게 될 겁니다. 도시화와 재개발은 결정권을 가진 어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정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의미의 숙제로 남습니다. - 새로운 것이 빼앗아간 것 샬럿은 아파트 꼭대기로 이사한 뒤 거리로 나가 놀지 못하게 됩니다. 새장에 갇혀 지내는 금빛 카나리아는 아파트에 갇힌 샬럿과 닮아 있습니다. 책 속에서 금빛은 샬럿과 카나리아를 감싸며 이런 비유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옛날 거리의 참새들은 정말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도 그렇고요. 그러다 아파트를 올려다보게 되었어요. 작은 발코니에서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들을 보았어요. 아마 부모님이 거리로 내려가 놀지 말라고 했을 거예요. 그 애들은 안전했지만, 새장 속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죠. 이삼십 층이나 되는 새장이요. 그 아이들과 새장의 카나리아는 상당히 비슷한 구석이 있었죠. 새장 속 카나리아를 생각해 보세요.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죠. 편안하고, 주인이 늘 먹을 것을 주고……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반면 길거리 참새는 차에 치일 수도 있고, 겨울에 얼어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훨씬 나은 삶이에요. 적어도 참새들은 자유로우니까요.” -찰스 키핑(더글라스 마틴,『찰스 키핑,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키핑은 도시화와 현대화가 아이들의 정서나 자유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을 위해 기존의 것을 부수고 거기 깃든 서정과 기억을 파괴하는 것에 관해, 새것과 개발에 집착하는 문명의 진행 방향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지요. 폭력적인 방식의 재개발과 도시화에 대해 현대를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키핑은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폭력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모든 것들’을 ‘아이들 삶의 일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 그러나, 회복을 이야기하는 키핑 카나리아는 새장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고양이의 공격이 있었지만 그 틈에 날아올라 찰리의 친구, 샬럿을 찾아 줍니다. 아파트에 갇힌 아이들을 풀어 주고픈 키핑의 소망이 담긴 것 아닐까요? 흔히들 키핑의 책이 우울하고 무겁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키핑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을 꺼려하면서도 삶의 굴곡 속에서 결국 회복과 평화,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파트 발코니에서지만 찰리와 샬럿과 금빛 카나리아의 우정을, 키핑은 지켜 주고 싶었나 봅니다. 새로운 기법, 표현 방식으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 수상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시각적인 면에서도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40여 년 전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의 탁월한 색감과 현대적인 조형감각을 보여 주고 있지요. 키핑은 색을 분리하여 석판으로 찍어 낸 이미지 위에 따로 선을 그려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왁스나 스펀지, 덧칠하기 등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시각적 효과를 내기도 했지요. 이렇게 완성한 그림의 인쇄는 비엔나의 이름난 인쇄업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리하여 현대의 인쇄 수준에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이처럼 독특한 그만의 기법은 이른바 ‘키핑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1967년,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몇십 년 전 도시 아이들의 이야기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의미 있게 읽힐 것입니다. 그림책으로서 예술적인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거기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현대 우리 사회의 재개발 문제와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1967년의 키핑이 건네는 이야기에서 2010년을 사는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일러스트레이터 소개

Charles Keeping (찰스 키핑)

런던출생.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열 네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조판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4년 후 제대했다. 이후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이 학교에서 만난 르네 마이어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4남매를 두었다. 런던의 지역적 색채를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독특한 색 분리로 유명한 작품 <찰리, 살롯데 그리고 황금 카나리다> (1967)와 잔혹한 아름다움이 있는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베달을 받았다. 그는 평생 이백 여권 정도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그 중에는 스무 권 가량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으로 그는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 스키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8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찰스 키핑은 런던의 동쪽 지역인 럼베스 거리에서 1924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는 무척 작았는데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거리"의 위험에 대해 주의를 주곤 하였다. 당시 런던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자본과 인간이 범람하며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을 시점이었다. 거리는 마차와 행상이 물건을 나르고 장사를 하느라 무척이나 혼잡했다. 아버지는 이런 환경에서 하나 뿐인 아들이 돌아다니다 다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핑은 주로 집 뒤에 있는 작은 마당이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당에는 그늘져 어두운 정원이 있었고 울타리가 잇어 바깥을 볼 수 없는 평범한 장소였다. 그에 비해 방은 창가를 통해 이웃에 있는 마구간이나 시장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끔 하나밖에 없는 누이 그레이스가 함께 놀아주었지만 그리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는 성장해서도 고향집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아내 르네 마이어의 말에 따르면 켄트에 위치한 큰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키핑은 과거의 정원을 재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큰처에 있는 프랭크 브라이언 남학생 학교에 입학한다. 그 즈음어었을까. 그는 항상 무언가를 관찰하여 그리고 있었다. 그 그림은 주로 연필로 그린 간단한 드로잉이나 소묘였는데 선이 돋보이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덟 살이 된 키핑은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 해 그는 가족의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가까운 친척이엇던 앤 아주머니의 남편이 오랫동안 앓던 결핵으로, 아버지가 궤양으로 진단 받은 3주 후 명원에서 삶을 마감하였다.(그의 나이 마흔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어 할아버지까지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그에게 이제까지 대화를 하고 얼굴을 만질 수 있었던 사람이 오늘 차가운 물체로 변해버린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고 죽음은 그에게 마음 속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이 없어지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키핑일가는 1937년 즈음 이웃 동네로 이사해야만 했다. 집 주인이 집을 팔아버려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엇다. 키핑은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몰입할 수 있었다. 이것도 잠시, 열 네살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만 했다. 그가 취직을 한 곳은 윌리엄 클로위즈 앤 선즈라는 유명한 인쇄소였다. 이 곳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이 책으로 인쇄되고 있었는데 그는 활자로 인쇄판을 짜는 조판공으로 일했다. 후에 그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인 석판 기술을 이곳에서 익혔다고 한다. 그리고 수준 높은 인쇄물을 보며 언젠가는 그들처럼 될 것임을 굳게 다짐했다. 

다시 시작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총을 들 수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군으로 향했다. 키핑 역시 1942년 열 여덟살에 영국 해군에 입대하여 4년 동안 무선전신통신사로 복무한다. (입대하기 직전 전기 사용량 검사원으로 일한 경험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것 같다.) 그런데 특이할 점은 어린 시절은 키핑의 내면 세계를 평생동안 지배한데 반해 4년 동안 겪은 전쟁은 그다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성인으로 성장하기 전의 시간을 더 민감하고 세밀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아무튼 키핑은 제대 후에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대학 수준의 종합 기술전문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 학교에서 만난 르네 마이어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특정 분야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두루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며 어느 분야에서 일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정했는데 여기에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인 르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록 

1949년 그는 본격적으로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를 시작하였다. 최초의 출판물은 테드 카반나흐의 (1955)이라는 소설이었다. 이후 10년 정도는 이런 식으로 다른 이의 글이나 광고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브록햄튼 출판사에 그림책 가제본을 가져가면서 <검은 돌리>(1966)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 (물론 틈틈이 에밀리브론테, 찰스 디킨스, 알프레드 테니슨, 도스토에프스키 같은 소설가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에서 글은 상징적인 역할만 해내면 그림만으로도 내러티브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찰스 키핑은 이런 그림책의 장르적 특징을 온전히 이해하여 수준 높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그가 남긴 200여권 가까이 되는 책 중에서 그를 영국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들어 준 것은 스물 두어 권 정도의 그림책이었다. 그의 스타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석판인쇄를 이용한 색 분리였다. 색감에 상당한 자신감이 잇었던 키핑은 당시 함께 일을 하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 부탁하여 비엔나의 유명한 인쇄업자에게 인쇄를 맡기게 했다. 그는 네 가지 색을 분리하여 현대의 인쇄 수준으로 보아도 결코 뒤떨어 지지 않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또한 <찰리, 샬롯데 그리고 황금 카나리아>(1967)에서는 컬러 인쇄에 드로잉선을 따로 그리거나 잉크를 번지게 하여 독특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 

 

아담과 천국의 섬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린 독자에게 너무 어려우며 심리적인 접근으로만 보아서는 성인도 소화하기 힘들었다. 그것이 그가 유일하게 받은 비난이었으며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국 이외에 외국 독자에게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20세기 초반의 런던의 거리, 그 암울하고 쓸쓸한 열정은 성인 독자에게 더 열광적으로 읽혔고 키핑은 그렇게 그림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리고 1973년 즈음에 가서는 현란한 색채 대신에 갈색(진정한 런던의 색깔이 아닐까)을 많이 써서 선을 살리는 작품을 보인다. 그는 말년에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작업에 참고를 하려고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르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언제나 런던 거리를 생각했으며 여행 중 인상적인 곳이 있으면 나중에 여운을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