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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섬에서 생긴 일 2016519184337.jpg

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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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보도자료

책소개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찰스 키핑의 유작. 전작 『길거리 가수 새미』에서 그러하였듯 말장난으로 시의원들을 비꼬고, 희화화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도시 재개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흙탕물이 이는 샛강 한가운데에 ‘낙원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의회에서 이곳에 고속도로를 내기로 했지요. 오래된 가게들이 헐리고 섬은 콘크리트로 메워지자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애덤은 너무 속상합니다. 바르다 할아버지와 벌리 할머니의 조언으로 친구들과 함께 습지에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기획 의도 -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 찰스 키핑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 책은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찰스 키핑의 유작으로, 도시 재개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발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새만금이 그러하고, 도시 재개발이 그러하고, 한반도 대운하 건설 문제가 그러하지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서로의 입장을 고수한 채 긴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어느 한 편의 승리나 포기, 혹은 양편의 타협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숱한 개발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찰스 키핑은 그런 우리에게 도시화와 멈추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개발 문제를 풍자하며 ‘새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합니다. 또한 이렇게 대립과 갈등을 낳는 문제에서 합의를 도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주며 그럼에도 그 가운데에 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는 평화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책의 특성 - 다큐멘터리적 구성 이 그림책은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표지부터 ‘이 다리로 연결된 지역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줍니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는 ‘낙원섬 횡단 도로 건설 계획’에 대한 찬성과 반대 서명이 보이고 그와 함께 이 허구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지역이 실제의 장소인 양 지도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애덤이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걸터 앉아 있는 그림으로 애덤의 시선, 행인의 시선, 차의 방향과 지평선의 소실점 등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를 넘기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찰스 키핑의 다큐멘터리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어 작가는 서점 창밖으로 보이는 점방 거리를 묘사하고, 채소 가게, 정육점, 생선 가게와 빵 가게를 보여 줍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사는, 아니 동물들만이 가족인 노인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애덤의 이웃이자 친구라고 합니다. -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 다큐멘터리는 계속되고 이제는 시의원들을 보여 줍니다. 찰스 키핑은 전작 『길거리 가수 새미』에서 그러하였듯 말장난으로 시의원들을 비꼬고,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시의원들은 육지에서 지역 일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애덤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고 이웃도...기획 의도 -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 찰스 키핑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 책은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찰스 키핑의 유작으로, 도시 재개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발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새만금이 그러하고, 도시 재개발이 그러하고, 한반도 대운하 건설 문제가 그러하지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서로의 입장을 고수한 채 긴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어느 한 편의 승리나 포기, 혹은 양편의 타협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숱한 개발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찰스 키핑은 그런 우리에게 도시화와 멈추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개발 문제를 풍자하며 ‘새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합니다. 또한 이렇게 대립과 갈등을 낳는 문제에서 합의를 도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주며 그럼에도 그 가운데에 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는 평화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책의 특성 - 다큐멘터리적 구성 이 그림책은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표지부터 ‘이 다리로 연결된 지역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줍니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는 ‘낙원섬 횡단 도로 건설 계획’에 대한 찬성과 반대 서명이 보이고 그와 함께 이 허구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지역이 실제의 장소인 양 지도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애덤이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걸터 앉아 있는 그림으로 애덤의 시선, 행인의 시선, 차의 방향과 지평선의 소실점 등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를 넘기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찰스 키핑의 다큐멘터리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어 작가는 서점 창밖으로 보이는 점방 거리를 묘사하고, 채소 가게, 정육점, 생선 가게와 빵 가게를 보여 줍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사는, 아니 동물들만이 가족인 노인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애덤의 이웃이자 친구라고 합니다. -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 다큐멘터리는 계속되고 이제는 시의원들을 보여 줍니다. 찰스 키핑은 전작 『길거리 가수 새미』에서 그러하였듯 말장난으로 시의원들을 비꼬고,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시의원들은 육지에서 지역 일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애덤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고 이웃도 아니지만 애덤이 사는 섬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찰스 키핑 식의 풍자를 엿볼 수 있지요. 메이저 블랑코Major blanco의 메이저major는 ‘대다수’ 혹은 ‘일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혼 클라우드 버크Hon Claude Berk에서 버크berk는 ‘멍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니 블런트Ernie Blunt의 블런트blunt는 ‘무뚝뚝하다’는 뜻이에요. 시빌 실리Sybil Sillie는 ‘맹한 시빌’ 쯤이 되겠고, 프림로즈 부인Lady Primrose은 ‘화려한 여사’ 정도가 될 거에요. 그리고 시장 세실 블란드 경Mayor Sir Cecil Bland이 김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블란드bland는 ‘김빠진’, ‘재미없는’의 뜻이에요. 그 외에도 언제나 기권하기 좋아하는 버니 블랙Bernie Black와 위니 화이트Winnie White가 있어요. ‘검다’는 뜻의 블랙black과 ‘희다’는 뜻의 화이트white를 사용해 타협점을 찾기 힘든 흑백논리의 사람들, 극단적인 좌와 우의 사람들을 작가는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의원들은 무질서하고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어른들로 스매쉬트smashit("smash it!"은 "때려 부숴!"라는 뜻) 철거 회사를 통해 낙원섬의 낡은 것들을 부수고, 도로를 새로 닦습니다. 그렇게 낙원섬은 금새 콘크리트로 메워집니다. - 소외된 사람들, 버려진 것에 대한 애정 그 사이, 습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애덤과 그의 친구들은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낙원섬의 개발 건에 관해 어떠한 결정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습지는 도로로 쓰기에는 쓸모없는 땅이라 그곳에다 그들만의 계획을 감행할 수 있었지요. 애덤의 친구인 바르다 할아버지와 벌리 할머니는 애덤에게 노인들끼리 생각해 낸 꾀를 알려 주고, 애덤은 친구들과 함께 철거지에서 버려진 목재와 벽돌을 모아 습지로 옮깁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낡은 것을 부수고 버려서 ‘새 것’을 만들었다고 기뻐하는 시의원들과, 그 곁에서 버려진 것을 줍고 고쳐서 진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애덤과 그의 친구들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찰스 키핑은 이러한 대조를 통해 진정한 개발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또한 키핑은 노인과 아이를 또다른 개발의 주체로 내세웠습니다. 넝마주이를 하며 동네를 지키고 있을 법한 노인 캐릭터는 찰스 키핑의 세상에서, 애덤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이고 탁월한 조언자입니다. 아이들 역시 어른들의 결정에 말없이 따르고 순응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고,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주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소외된 사람들과 버려진 것들에 대한 찰스 키핑의 애정을 읽을 수 있지요. - 찰스 키핑의 간접화법: 그림 속에 숨기기 이 모든 것을 그는 은근한 투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글만 읽어서는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읽어내기 힘들지요. 그러나 그림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키핑이 풍자하는 대상이나 소중히 여기는 가치 들을 읽어낼 수 있답니다. 시의원들이 추진했던 도로 개통은 게리 밴디노즈의 초대로 무언가 그럴 듯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밴디노즈가 테이프를 막 자른 순간, 시의원들은 거기 모인 군중이 도로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리 밴디노즈를 보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망한 시의원들은 잘라 놓은 테이프 앞에서 풀이 꺾인 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게리 밴디노즈의 광팬들과 경쟁 연예인의 광팬들, 싸우고 있는 북쪽 사람들과 남쪽 사람들, 자신만의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관심사만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지요. 반면, 애덤과 친구들의 개발은 어떠한가요. 벌리 할머니와 바르다 할아버지가 구워 주는 소시지와 감자를 먹으며 소박한 파티를 하고 있군요. 자기들이 엮었을 타이어 그네를 타고, 손으로 뚝딱뚝딱 지은 계단을 오릅니다. 동물들과 함께 뛰고, 버려진 자동차를 아지트처럼 점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서, 소외된 사람 없

일러스트레이터 소개

Charles Keeping (찰스 키핑)

런던출생.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열 네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조판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4년 후 제대했다. 이후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이 학교에서 만난 르네 마이어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4남매를 두었다. 런던의 지역적 색채를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독특한 색 분리로 유명한 작품 <찰리, 살롯데 그리고 황금 카나리다> (1967)와 잔혹한 아름다움이 있는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베달을 받았다. 그는 평생 이백 여권 정도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그 중에는 스무 권 가량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으로 그는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 스키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8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찰스 키핑은 런던의 동쪽 지역인 럼베스 거리에서 1924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는 무척 작았는데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거리"의 위험에 대해 주의를 주곤 하였다. 당시 런던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자본과 인간이 범람하며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을 시점이었다. 거리는 마차와 행상이 물건을 나르고 장사를 하느라 무척이나 혼잡했다. 아버지는 이런 환경에서 하나 뿐인 아들이 돌아다니다 다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핑은 주로 집 뒤에 있는 작은 마당이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당에는 그늘져 어두운 정원이 있었고 울타리가 잇어 바깥을 볼 수 없는 평범한 장소였다. 그에 비해 방은 창가를 통해 이웃에 있는 마구간이나 시장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끔 하나밖에 없는 누이 그레이스가 함께 놀아주었지만 그리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는 성장해서도 고향집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아내 르네 마이어의 말에 따르면 켄트에 위치한 큰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키핑은 과거의 정원을 재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큰처에 있는 프랭크 브라이언 남학생 학교에 입학한다. 그 즈음어었을까. 그는 항상 무언가를 관찰하여 그리고 있었다. 그 그림은 주로 연필로 그린 간단한 드로잉이나 소묘였는데 선이 돋보이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덟 살이 된 키핑은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 해 그는 가족의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가까운 친척이엇던 앤 아주머니의 남편이 오랫동안 앓던 결핵으로, 아버지가 궤양으로 진단 받은 3주 후 명원에서 삶을 마감하였다.(그의 나이 마흔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어 할아버지까지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그에게 이제까지 대화를 하고 얼굴을 만질 수 있었던 사람이 오늘 차가운 물체로 변해버린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고 죽음은 그에게 마음 속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이 없어지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키핑일가는 1937년 즈음 이웃 동네로 이사해야만 했다. 집 주인이 집을 팔아버려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엇다. 키핑은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몰입할 수 있었다. 이것도 잠시, 열 네살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만 했다. 그가 취직을 한 곳은 윌리엄 클로위즈 앤 선즈라는 유명한 인쇄소였다. 이 곳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이 책으로 인쇄되고 있었는데 그는 활자로 인쇄판을 짜는 조판공으로 일했다. 후에 그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인 석판 기술을 이곳에서 익혔다고 한다. 그리고 수준 높은 인쇄물을 보며 언젠가는 그들처럼 될 것임을 굳게 다짐했다. 

다시 시작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총을 들 수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군으로 향했다. 키핑 역시 1942년 열 여덟살에 영국 해군에 입대하여 4년 동안 무선전신통신사로 복무한다. (입대하기 직전 전기 사용량 검사원으로 일한 경험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것 같다.) 그런데 특이할 점은 어린 시절은 키핑의 내면 세계를 평생동안 지배한데 반해 4년 동안 겪은 전쟁은 그다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성인으로 성장하기 전의 시간을 더 민감하고 세밀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아무튼 키핑은 제대 후에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대학 수준의 종합 기술전문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 학교에서 만난 르네 마이어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특정 분야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두루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며 어느 분야에서 일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정했는데 여기에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인 르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록 

1949년 그는 본격적으로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를 시작하였다. 최초의 출판물은 테드 카반나흐의 (1955)이라는 소설이었다. 이후 10년 정도는 이런 식으로 다른 이의 글이나 광고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브록햄튼 출판사에 그림책 가제본을 가져가면서 <검은 돌리>(1966)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 (물론 틈틈이 에밀리브론테, 찰스 디킨스, 알프레드 테니슨, 도스토에프스키 같은 소설가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에서 글은 상징적인 역할만 해내면 그림만으로도 내러티브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찰스 키핑은 이런 그림책의 장르적 특징을 온전히 이해하여 수준 높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그가 남긴 200여권 가까이 되는 책 중에서 그를 영국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들어 준 것은 스물 두어 권 정도의 그림책이었다. 그의 스타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석판인쇄를 이용한 색 분리였다. 색감에 상당한 자신감이 잇었던 키핑은 당시 함께 일을 하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 부탁하여 비엔나의 유명한 인쇄업자에게 인쇄를 맡기게 했다. 그는 네 가지 색을 분리하여 현대의 인쇄 수준으로 보아도 결코 뒤떨어 지지 않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또한 <찰리, 샬롯데 그리고 황금 카나리아>(1967)에서는 컬러 인쇄에 드로잉선을 따로 그리거나 잉크를 번지게 하여 독특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 

 

아담과 천국의 섬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린 독자에게 너무 어려우며 심리적인 접근으로만 보아서는 성인도 소화하기 힘들었다. 그것이 그가 유일하게 받은 비난이었으며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국 이외에 외국 독자에게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20세기 초반의 런던의 거리, 그 암울하고 쓸쓸한 열정은 성인 독자에게 더 열광적으로 읽혔고 키핑은 그렇게 그림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리고 1973년 즈음에 가서는 현란한 색채 대신에 갈색(진정한 런던의 색깔이 아닐까)을 많이 써서 선을 살리는 작품을 보인다. 그는 말년에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작업에 참고를 하려고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르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언제나 런던 거리를 생각했으며 여행 중 인상적인 곳이 있으면 나중에 여운을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