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고 핍박 받는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 이 그림책은 라틴아메리카 어린이들의 가난하고 힘든 삶에 대한 문학적 보고서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파블로’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입니다. 이 그림책에는 ‘파블로’라고 불리는 일곱 명의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700미터 땅속에서 구리를 캐는 칠레 광부의 아들 파블로, 아마존 밀림에서 엄마와 열매를 따서 먹고 사는 파블로, 폭압적인 독재정권을 피해 가족을 따라 멕시코로 망명한 아르펜티나 소년 파블로, 뉴욕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가이아나 이민자의 아들 파블로, 페루의 오지 마을에 살면서 하루에 우유 한 잔 마시기도 힘든 가난한 파블로,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고달픈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파블로, 먼저 미국으로 간 부모를 뒤쫓아가기 위해 위험한 화물열차 지붕 위에 몸을 실은 멕시코 소년 파블로. 이들의 삶은 하나같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무엇이 어린이들을 힘든 삶으로 내몰았을까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 때문이라고 이 그림책의 작가는 말합니다. 독재정치가 낳은 불평등한 분배 구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풍요의 땅인 미국으로 떠나도록 사람들의 등을 떼밉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국경 수비대에 잡히면 아예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되거나(부모님을 찾아 미국으로 가는 어린 파블로도 이전에 두 번이나 국경 수비대에 걸려 멕시코로 돌려보내진 적이 있지요), 심지어는 목숨을 잃기까지 합니다. 미국에서도 이들은 불법 체류자가 되어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합니다. 이처럼 기회의 땅이라고 알려진 미국에서의 생활도 중남미 이민자들에게는 힘들기 짝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삶에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이 그림책에서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속에서 그 희망의 씨앗을 찾아냅니다. 지쳐 곯아떨어진 광부 아빠의 가슴에 살며시 손을 대고 세상의 중심을 느끼는 칠레의 파블로, 떠돌이 악단의 연주에 감동해 애써 딴 열매를 기꺼이 건네는 아마존의 파블로, 독재정권에 희생된 친지들을 기리며 불의에 항거하는 시를 쓰는 아르헨티나의 파블로,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일은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가이아나의 파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통령을 뽑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찌감치 깨달은 페루의 파블로. 세상에는 아주 많은 파블로들이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예요. 회전하는 지구와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그들의 심장도 똑같이 뛰고 있으니까요.
이 그림책의 지은이 호르헤 루한은 핍박 받고 힘든 삶을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어린이들이야말로 미래의 주인공이자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 갈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공정하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가 키아라 카레르가 그린 그래파이트 연필과 색연필 그림은 거칠지만 섬세한 감성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진흙 속에서 솟아오른 연꽃처럼 거친 삶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동심을 묘사하는 그녀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호르헤 루한의 글과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줍니다.
동화를 집필하며 오래전부터 어린이책을 작업해 왔습니다. 현재 로마에 살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했습니다. 2018년에 『Happy Numbers(행복한 숫자)』로 ‘스트레가상 동화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8년 최고의 작가로 ‘안데르센상’을 수상했습니다. 해외에서 출간한 그림책으로 『Come funziona la maestra(선생님은 어떤 일을 할까?)』, 『Uno come Antonio(안토니오 같은 아이)』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