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도자료
동시조에 대한 새로운 시도,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의 눈은 어른들과 다른 것을 본다. 시선이 다른 것에 머무르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이 아니라, 어떤 형식이나 문화, 틀에 대한 것도 동일하다. 어린이의 눈과 판단은 어른들과 다르다.
‘동시조’가 예스럽다는 생각에 많은 시인들이 현대적이고 낯선 소재들을 동시조의 틀에 집어넣어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유이지 시인은 오히려 한자나 전통, 속담, 구전노래 등을 소재로 선택하는 과감함을 선보인다. 그래서 그 예스러운 소재들을 예스러운 틀에 넣기 위해 어린이들의 발상이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너희들이 / 내게 준 / 한 표 / 한 표가 // 칠판에 / 발 디디며 / 바를 정正 되어 / 그려질 때 // 반장이 / 되려는 마음 / 바위처럼 무거워졌어.
- ‘바를 정正’ 전문
반장 선거라는 학교 생활을 ‘동시조’ 틀에 담을 때 한자 바를 ‘정(正)’에 집중한다. 적어도 선거의 과정과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정말로 칠판에 그려지는 그 글씨에 오롯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피자나, 요란한 선거운동 등 요즘 유행하는 선거 장면을 동시조에 넣지 않고, 오히려 한자 하나에만 집중한 시인의 선택이 어린이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해 준다. 시인은 이외에도 ‘호수 호(湖)’ ‘강물 하(河)’ ‘바다 해(海)’ ‘북녁 북(北)’ ‘좋을 호(好)’ ‘임금 왕(王)’ 등 다양한 한자를 동시조에 담아냈다.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영어 발음에도, 가오리연이나 깍두기 같은 언어와 연관되는 시상까지 확장해가며 어린이의 마음을 담아 낸다. 동시조임에도 소재의 확장과 그에 맞물리는 시상의 확장이 어마어마하다.
또한 유이지 시인의 시에는 제대로 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시에서 서사가 빠지면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짧아도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어야 읽혀지고 공감이 되는 시로 어린이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나 혼자도 아니고 내 식구들 살 건데….” // 강한 줄만 알았는데 / 아빠 눈물 처음 봤다. // 독산동 / 반지하 그 집 / 다녀온 / 그 밤에.
- ‘반지하 집’ 전문
앞뒤 설명이 없어도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짧은 시만 봐도 알 수 있다. 긴 이야기가 압축되기도, 생략되기도 하면서 시에 담길 때 어린이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찾아서 상상의 출발점에 선다. 그런 동시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시가 유이지 시인의 작품 중에는 많이 보인다. 할머니를 돌보는 엄마의 모습 하나 속에서도 엄마의 사랑을 발견하고(내리 사랑), 약봉투에 담긴 엄마의 글씨만 등장해도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약 봉투). 동네에서 노란 자동차만 봐도 유치원 가던 기억이 새록거리고(노란 버스), 무더기로 핀 조팝꽃을 보면서도 흥부네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조팝꽃).
유이지 시인의 신작 동시집을 읽다보면 동시조를 읽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소재의 확장에서 출발해 다양한 이야기들, 그 위에 열리는 시적 상상력들을 만나다보면 새로운 시적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