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도자료
만약 내 머리 위에 나무가 자란다면 그 나무는 나일까? 나 아닌 다른 존재일까?
가지를 자랐을 때 팔다리가 잘려나갈 만큼의 아픔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니라는 도발적인 답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다. 통증은 그저 내 몸 임을 확인시키는 하나의 증표일 뿐이다. 이는 내가 살아 있는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목숨을 끊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존재함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만 답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답이 될 수 없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든 마취로 인해 전혀 통증이 없든 결국 붙어 있는 쪽은 나이고 떨어져 있는 쪽은 내가 아니다. 마치 머리카락을, 손톱을, 콧물을, 소변을 내 몸이 더 이상 보유하지 않고 단절하거나 배출하여 내 몸과 분리되는 순간, 그것들은 이미 나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연결과 분리만이 내 몸과 타자를 구분하는 덕목이 된다. 즉 우리는 몸의 아웃라인을 경계로 한 나와 타 존재가 세상에서 함께 공존해 살아간다.
그렇기에 사춘기의 어느 날, 까뭇까뭇 자라난 민망한 콧수염이 내 것이 되는 것처럼,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내 머리 위에 하루 밤 새 자라난 나무라 할지라도 황망할지언정 그건 바로 나인 것이다. 어쩌면 내 머리 위의 나무라는 것은 현상적으로는 이미 나였음에도, 인식은 이 사실을 숨기거나 은폐하기 위해 뒤쫓아 따라가며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만을 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작가 이정욱은 그림책<내 머리 위의 나무>에서 내 몸에 불쑥 자라난 나무를 통해 내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내가 세상과 접한 영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불쑥 등장해 버린 말도 안 되는 황망한 발생과 진행은 이미 어엿한 내 몸이기에 싹둑- 쉽게 재단하거나 꺾어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이를 내 존재로서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다시 세상과의 접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 내가 접한 세상과의 궤적, 규칙을 새롭게 정립해 나아가야함을 강조한다. 이로써 그림책 <내 머리 위의 나무>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즈음이면 원치 않았던 생경한 외부가 내 몸이 되고 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다시금의 내가 새로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입구와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