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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누구나 자신에게만 보여 지는 단점을 머리 위의 나무로 비유한 그림책이다. 내 머리 위의 나무는 어느 날 뾰루지처럼 돋았다. 점점 자라고 자라 누가 봐도 나무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자라나 내 머리 위에 뻗어 있다. 이 나무는 외떨어져 혼자 일 때 자존감이 떨어질 때 더욱 크고 무성하게 자라난다. 무성한 고난의 숲 풀 속에서 작은 희망의 지저귐은 나무가 자라났던 숲이 라는 공간 속에서 다시금 내 존재의 가치를 되찾을 용기를 얻게 한다. 자르거나 뽑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닌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대면하여 외부세계와 공유할 때 세상은 내게 다시 새로운 생명과 삶의 이유를 찾아준다. 내 것이 되었을 때 나무는 '나'라는 범주 안에 비로소 하나가 되어 함께 자라난다. 20210104_10_01.jpg 20210104_10_02.jpg 20210104_10_03.jpg 20210104_10_04.jpg

출판사 보도자료

만약 내 머리 위에 나무가 자란다면 그 나무는 나일까? 나 아닌 다른 존재일까? 가지를 자랐을 때 팔다리가 잘려나갈 만큼의 아픔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니라는 도발적인 답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다. 통증은 그저 내 몸 임을 확인시키는 하나의 증표일 뿐이다. 이는 내가 살아 있는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목숨을 끊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존재함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만 답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답이 될 수 없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든 마취로 인해 전혀 통증이 없든 결국 붙어 있는 쪽은 나이고 떨어져 있는 쪽은 내가 아니다. 마치 머리카락을, 손톱을, 콧물을, 소변을 내 몸이 더 이상 보유하지 않고 단절하거나 배출하여 내 몸과 분리되는 순간, 그것들은 이미 나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연결과 분리만이 내 몸과 타자를 구분하는 덕목이 된다. 즉 우리는 몸의 아웃라인을 경계로 한 나와 타 존재가 세상에서 함께 공존해 살아간다. 그렇기에 사춘기의 어느 날, 까뭇까뭇 자라난 민망한 콧수염이 내 것이 되는 것처럼,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내 머리 위에 하루 밤 새 자라난 나무라 할지라도 황망할지언정 그건 바로 나인 것이다. 어쩌면 내 머리 위의 나무라는 것은 현상적으로는 이미 나였음에도, 인식은 이 사실을 숨기거나 은폐하기 위해 뒤쫓아 따라가며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만을 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작가 이정욱은 그림책<내 머리 위의 나무>에서 내 몸에 불쑥 자라난 나무를 통해 내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내가 세상과 접한 영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불쑥 등장해 버린 말도 안 되는 황망한 발생과 진행은 이미 어엿한 내 몸이기에 싹둑- 쉽게 재단하거나 꺾어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이를 내 존재로서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다시 세상과의 접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 내가 접한 세상과의 궤적, 규칙을 새롭게 정립해 나아가야함을 강조한다. 이로써 그림책 <내 머리 위의 나무>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즈음이면 원치 않았던 생경한 외부가 내 몸이 되고 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다시금의 내가 새로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입구와 마주하게 된다.

일러스트레이터 소개

대학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이후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육아를 하면서 아이와 그림책으로 놀고 웃고 교감하며 그림책 세계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 머리 위의 나무>는 이정욱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