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도자료
달콤하고 시큼하고 단단했다.
맛이 너무 생생해서 당황스러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하는 고비 씨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편집자는 대신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돈 드는 일이 아니니 자투리 종이에 작게 그리자고 결심한 고비 씨는 방울토마토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온다. 찬물에 씻어 입에 넣은 방울토마토의 맛은 당황스러웠다. 마치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맛처럼 달콤하고 시큼하고 단단했다. 껍질이 이에 닿아 터지는 소리와 과육의 질감, 코를 자극하는 싱싱한 감각이 고비 씨의 작은 방을 가득 채운다. 다음번 미팅에서 고비 씨는 편집자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주로 수채 물감을 쓴다.
수채 물감은 물에 녹여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자린고비』를 이끌어가는 그림은 부드러운 연필선과 묽은 단색의 수채화이다. 노인경은 패턴 스타일과 팝업으로 구성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색연필과 트레이싱지의 겹침을 이용한 『숨』, 픽셀아트로 그린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등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따라서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해 온 작가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흐릿하고, 번져 가며, 어쩌면 단조롭게 진행되는 그림 스타일은 오히려 골똘한 고비 씨의 생각과 하루하루의 시간, 흘러가는 계절감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최소한의 선과 색 안에서 독자는 자기의 삶을 굴리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이의 결연한 표정을, 빈틈없던 일상에 순간순간 침입하는 기쁨과 새로움을, 나와 타인의 이야기가 겹쳐 울릴 때 생겨나는 조용한 떨림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오늘치의 그림을 그린다.
내 이름은 자린고비다.
긴 겨울 끝에 찾아온 어느 봄날 오후에, 고비 씨는 점심을 먹으러 와서 떡볶이를 주문한다. 매일 먹던 김밥이 아닌, 계란이 반 알 들어 있고 빨갛게 익은 양배추, 파, 어묵이 든 떡볶이는 사천오백 원이다. “아… 좋네요.” 매일 먹던 김밥이 아닌 떡볶이를 주문해 분식집 아주머니를 당황시키고, 푸짐한 한 그릇의 행복을 느끼고 나서 고비 씨는 일어선다. 시간과 노력을 다해 하루치의 그림을 그리고, 걸어야 하는 만큼의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고비 씨의 하루는 여전하지만 조금 변했다. 그의 삶을 둘러싼 모든 풍경들이 아름답다.
책을 먼저 읽은 수신지 작가(일러스트레이터 · 만화가, 『며느라기』 작가)는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날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날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바로 좋은 기억의 모습을 한 책갈피들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