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대구 우수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 빨강머리앤 점자 라벨 그림책 『까망 돼지』 까망 돼지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매일매일 즐겁게 살아가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입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글 실력은 부족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사투리도 잘 알고, 다른 친구들에게는 생소한 음식도 많이 압니다. 그게 다 할머니 덕분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할머니는 까망 돼지의 비밀도 절대 발설하지 않는 비밀요원이고, 까망 돼지는 할머니의 든든한 염색 미용사이기도 합니다. 까망 돼지는 그런 할머니를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지요. 할머니가 까망 돼지의 생일날 케이크 대신 언제나 수수떡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까망 돼지는 수수떡이 싫은 것이라기보다 친구들이 그런 까망 돼지를 다른 시선으로 보고 놀리는 게 싫은 건데 할머니는 그런 것도 모르고 이번에도 또 수수떡을 준비합니다. 까망 돼지는 괴로움과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까망 돼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할머니가 까망 돼지의 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두구두구두구... 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수수떡이 곧 공개됩니다. 할머니가 쓴 쪽지만 살짝 보여드릴까요? “니는 니다.” 자, 할머니와 까망 돼지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현대의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최근까지도 가족이란 개념은 남녀의 결혼과 그로 말미암아 태어난 아이들로 구성되는 것이 ‘정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도 포기하고, 심지어 아이 낳는 일을 포기하는 시대에 이르러 가족이란, 함께 생활하며 일종의 유대감이 존재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포괄적인 개념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부모 가족이나 조손 가족, 입양 가족이나 다문화 가족은 이제 매우 흔한 가족공동체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가족의 유형을 정상/비정상으로 경계 짓는 자체부터가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작은 ‘차이’로 경계를 긋고 서로를 ‘차별’합니다. 『까망 돼지』는 할머니와 소소한 추억을 쌓아가는 까망 돼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까망 돼지는 조손 가족의 한 구성원이며, ‘까망’이라는 차이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까망 돼지가 생각하는 차이나 차별은 눈에 보이는 ‘까망’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까망 돼지는 다른 친구들보다 사투리도 많이 쓰고, 야뇨도 있으며, 부모의 존재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까망 돼지를 전혀 주눅 들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할머니의 존재, 또는 할머니가 까망 돼지를 양육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그림책 『까망 돼지』의 스토리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들이 까망 돼지의 시점으로 유쾌하게 전개됩니다. 딱 한 가지 할머니가 못마땅한 점을 털어놓는 데 이르러 스토리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바로 생일날 생크림케이크가 아닌 수수팥떡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할머니의 시점이 드러나고 단선적일 수 있었던 스토리에 상징성이 부여됩니다.
예부터 수수팥떡은 아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아준다는 의미로,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날 해 먹이던 음식이었습니다. 까망 돼지의 할머니는 무지개떡을 수수팥떡으로 감쌈으로써 ‘너는 너’라는 고유한 정체성과 보호받아야 할 다양성에 그 어떤 악귀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올바른 가치는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 그림책의 점자 라벨이 가지는 가치가 빛이 나는 이유는 그림책의 주제에 힘입은 출판 방식의 다양성과 평등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얇은 연필선 위에 옅은 수채 물감으로 채색하여 일상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