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클로지 그래픽 포엠(Graphic Poem) 시리즈 첫 번째.
내면아이(Inner Child,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를 소재로 작가의 수려한 그림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내면아이에 대해 담담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따스한 '어른'적 시선도 잊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 내밀한 소재를 거침없이 표현한 '나무, 소녀'에서 못내 이 작은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을 맞이할지 모른다.
'나무, 소녀'를 음악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다지오(Adagio : 아주 느리고 침착하게)로 시작, 프레스토(Presto : 빠르고 성급하게), 라르고(Largo : 아주 느리고 폭넓게)로 성급하게 이어진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온전하지 못한 템포의 '널뜀'은 바로 우리 인생의 변주變奏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모른척했던, 묻었던(혹은 묻고자 했던) 이 아이는 바로 ‘내면의 아이’이다. 제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하더라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심연의 그곳에서 웅크리고만 있을, 그 서툰 모습 그대로의 아이.
이 얇디얇은 한 권의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자 동화가 아닌, 작가의 ‘내면아이’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그리고 깨달음이다.
늘 내 안에 존재했으나 이제서야 알게 된, 어쩌면 평생을 깨닫지도 못할 수도 못 셀 것들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이 책의 제목과 장르를 정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제목으로 여러 후보들이 난무했으나 '나무'와 '소녀', 두 가지에만 오롯이 집중하기로 했다. 장르는 더 정하기가 어려웠는데 책이 상징하는 우리 내면이라는 것이 그만큼 복잡다단한 탓이려니.
바이클로지는 나무와 소녀, 이 내면아이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그래픽 포엠(Graphic Poem)이라는 앙큼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림'과 '시', 살짝은 이질적인 두 개의 키워드는 '그래픽의 노블'처럼 이곳에서 합쳐진다.
오늘은 '나무, 소녀'와 함께 내 안에 숨겨진 작디작은 꼬마를 찾는 숨바꼭질을 해도 좋지 않을까. 어디에선가 바람이, 나무의 향이 그윽하게 실려오는 날에는.
나무, 소녀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한 시기에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위로와 위안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겁니다. 어쩌면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말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을 수도 있을 이 이야기를 왜 지금 꺼내야 되는 것인가, 저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경을 이겨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마다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이라는 답으로 이 책이 나오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기까지, 학생 시절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 안의 내면 아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체득하기까지의 기간이 꼬박 10년이 걸렸네요. 그 아이를 만나서 제대로 다독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그 아이가 숨어버린 가장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란 어느 정도일까요. 그 시절 너무 어렸던 나는 도저히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지워버리고 잃어버린 그 기억을 꺼내 홀로 찢겨나가는 고통과 바꿀 수 없던 과거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겪은 일이면서도, 내 일 이 아닌 양 그저 옆집 철수네 영희는 이랬대- 마냥 나의 고통을 3자화 시키는 것처럼, 그 당시 모두가 그 아이를 무시하고 방치했다고 해서 나 역시 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보단 크게 소리치고 잘못된 세계를 부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의 삶의 첫걸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이었던 것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또 한 가지,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절대로 납득하지 못했던 진실. 내가 그 아이의 부모이자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목석처럼 메마른 그 아이에게, 내가 물을 주고 자양분을 채우고 햇볕을 쬐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허물어진 그 땅 위에 강한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오랜 시간을 그저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것. 그 아이에게 어떠한 죄책감도 수치심도 비난도 뿌리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 아이가 가장 바랐던 것, 잃어버린 마음과 신뢰의 회복, 존재 자체의 부정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믿음,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존재 자체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고,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나를 돌아보는 작업은 굉장히 가슴 벅차고,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습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내가 평온함을 가질 수 있는 건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 자신의 상처에 대하여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박약이나 나약함으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임을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어둡고 긴 동굴 밑바닥에서 숨죽여 울지도 못하는 내면 아이를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께서도 마주할 수 있기를, 마음을 잃어 아파하는 모든 우리 안의 내면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1호 독자인 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미 양 美 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