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내 딸에게, 너의 세상은 나의 세상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애틋한 바람을 담아”
20세기 최고의 유머 · 풍자 작가 제임스 서버가
외동딸에게 바친 반전(反戰) 그림책
뉴욕 타임스 극찬!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중 가장 진지하고, 가장 익살스럽다!”
1939년 출간 이후 일본, 프랑스, 스웨덴,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가, 프랑스에선 ‘알베르 까뮈’가 번역한 전 세계 스테디셀러
마크 트웨인 이후 최고의 유머·풍자 작가로 손꼽히는 제임스 서버의 『마지막 꽃』은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발표된 반전(反戰) 그림책이다. 색채를 배제한 간결한 그림과 절제된 언어로 전쟁의 비극과 인류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동시에, 꽃 한 송이의 회복력을 통해 전쟁과 평화, 사랑의 영원한 순환, 희망을 이야기한다. 세상이 무너져 내린 절망 속에서도 움튼 ‘마지막 꽃’은 무얼 의미할까. 우리가 놓지 말아야 마지막 꽃은 무엇일까.
작품이 발표된 직후 뉴욕 타임스는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중 가장 진지하면서도 가장 익살스러운 기고문’이라며 극찬했고,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T. S. 엘리엇은 ‘시대의 모습을 담은 하나의 기록’이라고 호평했다. 작품 첫머리에는 외동딸 로즈메리를 위한 헌사가 실려 있는데, 단 한 문장만으로 후손들만큼은 전쟁 없는 세상,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제임스 서버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아직 생소하던 시기에 발표되어 시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거친 펜 선 하나로 완성한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여기에 신중히 선택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문장이 더해져 인간의 취약함과 절망, 그리고 희망을 묵직하고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마지막 꽃』은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물론이고,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끊임없이 회자된다. 작품 속 메시지는 전쟁과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2007년에 미국에서 재출간된 판에는 1939년 초판의 드로잉을 고화질로 다시 스캔해 수록했고, 디자인은 제임스 서버의 손녀이자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사라 서버가 맡아 새롭게 완성했다. 미국판과 달리 한국어판 표지는 언덕 위에 피어난 노란 꽃 한 송이를 담아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전 세계 대표 유머·풍자 작가 ‘제임스 서버’의 반전(反戰) 그림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전쟁 뒤 남는 것은 문명의 파괴와 고통스러운 상처뿐인데, 그럼에도 인간은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작품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을 통해 세상은 또다시 문화를 꽃피우고, 예술을 살찌우고, 인간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제임스 서버가 남긴 삶의 궤적 안에서 ‘유머와 풍자의 대가’라는 수식어는 늘 빠짐없이 등장한다. 《마지막 꽃》 역시 제임스 서버다운 풍자를 놓지 않으면서 호소력 짙은 반전(反戰) 메시지를 보여 주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전쟁이 시작되고 두 달 뒤인 1939년 11월에 출간되었다. 간결한 그림과 절제된 언어로 전쟁의 위험과 인류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동시에, 꽃 한 송이의 회복력을 통해 전쟁과 평화, 사랑의 영원한 순환, 희망을 이야기한다. 뉴욕 타임스는 이 작품을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중 가장 진지하고, 가장 익살스러운 기고문”이라고 극찬했다. 이는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그 표현 방식이 냉소적이거나 절망에 함몰되지도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너의 세상은 나의 세상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애틋한 바람을 담아”
외동딸에게 바치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간절한 호소
《마지막 꽃》 맨 앞에는 제임스 서버가 하나뿐인 딸 로즈메리를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고백하는 헌사가 있다. 단 한 문장만으로 후손들만큼은 전쟁 없는 세상,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절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작품 속 ‘마지막 꽃’은 세상이 무너져 내린 절망과 고통 속에서 마지막까지 놓지 않아야 할 무언가를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희망, 작은 힘의 연대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일 것이다. 《마지막 꽃》은 우리가 쥐어야 할 마지막 꽃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하는 작품으로, 모든 세대가 함께 읽으며 전쟁과 대립,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939년 출간 이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미 있는 고전
그림으로 보는 우화, 시대를 앞서간 명작
서버의 글과 그림은 당대에서도, 시간을 초월해서도 지속될 힘이 있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모습을 담은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_ T. S. 엘리엇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황무지》 저자)
이 책을 읽을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은 나치가 유럽을 짓밟기 시작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이 메시지는 유효하다.
_ 세스 (만화가, 《Wimbledon Green》 저자)
《마지막 꽃》은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물론이고,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끊임없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메시지는 여전히 의미 있고, 유효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묵직함을 넘어 숙연함마저 차오르는데, 그 숙연함은 절망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나아가 다시 피어날 한 송이 꽃에 대한 기대를 심어 준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꽃》은 당대의 모습을 담은 하나의 기록이자,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림으로 보는 우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그림과 텍스트를 결합한 형식이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아직 생소하던 시기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시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거친 펜 선, 색채를 배제한 그림은 그 자체로 화면을 장악하는 힘이 있으며, 신중히 선택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문장과 더해져 인간의 취약함과 절망,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강렬하게 전달한다.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가, 프랑스에선 ‘알베르 까뮈’가 번역하며
묵직한 울림을 전한 전 세계 스테디셀러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잔인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훗날 전쟁의 당사자인 군인들조차도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그런 전쟁일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도 '세상의 마지막 꽃'을 지키려고 많은 사람이 연대하고 있다. 《마지막 꽃》도 그 연대에 하나의 힘이 될 것이다.
_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일본어판 역자)
《마지막 꽃》은 단지 미국 문학 역사에만 머무는 작품이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야 하는 고전이다. 프랑스에서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까뮈가 번역했고,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새롭게 번역하여 소개하며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전했다. 언어를 넘어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형식 속에 담긴 보편적 메시지 덕분일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 전쟁과 인간, 희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이 책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만들었다.
이번 한국어판 번역은 작가 강무홍이 맡았다. 강무홍은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 온 반전(反戰) 운동가이자 시민 운동가이기도 하다. 어린이 인권 운동가 야누시 코르차크의 삶을 그린 《천사들의 행진》과 같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을 써 왔다. 묵직한 작품 활동을 이어 온 역자 강무홍이 단어 하나하나 고심하여 우리말로 옮겼으며, 책 마지막에는 해설을 덧붙여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재담가는 타인을 희화화하고, 풍자가는 사회를 희화화하며, 유머 작가는 자신을 희화화한다”라는 재치 있는 명언을 남긴, 마크 트웨인을 잇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 제임스 서버. 그는 일생 동안 종종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써냈다. 삼 형제의 둘째였던 그는 일곱 살 때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던 중 화살에 왼쪽 눈이 맞아 실명하였다. 시력 탓에 혼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경험은 기발하면서도 우울한 상상력을 키우게 했고, ‘타고난 코미디언’이었던 어머니와 유별난 가족의 영향은 유머라는 형식을 빌려 부조리한 일상에 대한 진지한 기록을 남기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졸업한 뒤 서버는 《콜럼버스 디스패치》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밤에는 극단에서 뮤지컬 각본을 썼다. 《시카고 트리뷴》 《뉴욕 이브닝 포스트》를 거쳐 《뉴요커》에 입사한 그는 E. B. 화이트와 펴낸 첫 책 『섹스는 필요한가?』의 삽화를 그리면서 만화가로도 영역을 넓혔다. 서른아홉에 쓴 자서전 『제임스 서버의 고단한 생활』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단편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무렵,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게 되어 그는 거의 장님이 되었지만, 천부적인 기억력으로 글쓰기 생활을 지속했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음식은 웨딩케이크”라는 자신의 우스갯말처럼 첫 번째 아내와의 불행했던 결혼은 서버의 작품에서 드센 여자와 소심한 남자로 자주 반영되었다. 그는 부부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통찰하는 많은 글을 썼다. 특히 평범한 현실과 달리 공상에서는 멋진 활약을 보여 주는 「월터 미티의 이중생활」은 대공황 이후 침체되었던 미국 남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 ‘월터 미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월터미티’는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진 사람’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사전에 등재되었다. 한편 서버는 수십 마리 개를 기른 애견가로 개를 주제로 한 작품도 여럿 남겼으며, 말년에는 동화와 각본에도 주력했다. 1961년에는 자신의 단편들을 엮은 뮤지컬 <서버 카니발>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위트 있는 필치로 미국인들에게 큰 웃음을 준 그는 뇌수술로 인한 폐렴 합병증으로 1961년 11월 2일 뉴욕에서 “신이여 은총을……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