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뒷다리에 알을 매달고 레탈리트를 조심스럽게 건너던 수컷 산파개구리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달려온 무언가에 치이고 만다. 산파개구리는 마지막 힘을 모아 연못에 다다르지만 결국 숨을 거둔다. 산파개구리가 남긴 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알에서 올챙이가 부화한다. 그렇게 ‘알리트’는 홀로 태어나 아름답고 잔인한 세상을 마주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피어난 이름
어스름을 찢는 굉음이 지나고 정적이 가득한 저녁, 개구리 한 마리가 검은 선 위에 누워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연못에 다다르지만 단 하나의 알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알리트는 홀로 태어나 세상을 마주한다. 간신히 태어난 알리트는 태어나자마자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 생을 향한 처절한 모험 속에서 알리트는 연어 ‘이오드’, 산양 ‘플롱크’, 신비로운 고목 ‘악손’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생명과 마주한다.
『알리트: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는 작고 연약한 생명의 시선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 두려움과 용기, 외로움과 연대가 교차하는 순간들을 차분하게 비춘다. 낯선 존재와의 만남은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가차 없다. 무감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알리트는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겨우 살아남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모든 경험이 알리트를 세계와 연결하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한 겹씩 쌓아가게 한다. 자신이 왜 ‘알리트’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를 알리트라 소개하던 작은 산파개구리는, 수많은 삶을 체험한 끝에 마침내 자신의 이름에 담긴 함의를 깨달으며,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알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숙명을 마주한다.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자연의 힘
제레미 모로의 자연에는 부드러운 원과 곡선이 가득하다. 뜨고 지는 태양과 물결, 동그란 자갈과 숲속을 맴도는 나무들의 메아리까지, 생명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원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되돌아오며 순환을 이룬다.
반면 직선은 돌연하고 냉혹하다. 검은 직선으로 둥근 세상을 가르는 ‘레탈리트’가 등장한 것이다. 원과 직선의 시각적인 대조는 자연을 향한 인간의 날 선 폭력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그 선 위에서 무수히 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원을 끊은 육중한 힘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자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절된 틈을 또 다른 생명으로 채우며 끊어진 세상을 잇는다. 결국 알리트가 알을 품고 언젠가 그 검은 선을 스스로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담대함과 폭발하는 생명력, 두려움마저도 제쳐 두게 하는 사랑의 힘을 목격한다.
그림으로 빚어낸 대서사시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 제레미 모로가 들려주는 생의 노래
앙굴렘 국제 만화제 황금야수상과 볼로랴 라가치상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을 석권한 제레미 모로는 『알리트: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로 2025년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미들 그레이드 부문 스페셜 멘션을 수상하며 또 한 번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알리트: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에서는 작은 개구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낮은 시선에서 올려다보는 세상에는 경외감이 가득하다. 제레미 모로가 구축한 세밀한 시각 언어는 대사와 장면 사이사이를 섬세하게 메운다. 강렬한 색채와 칸칸을 채운 대범한 타이포그래피, 역동적인 장면 구성은 독자를 알리트의 세상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알리트: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맞닿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의미를 그려낸 서사시다. 작은 개구리의 여정을 통해 제레미 모로는 그래픽 노블이 도달할 수 있는 시각 언어의 정점을 보여주며,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을 생명의 목소리를 우리 안에 새겨 넣는다.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jeremiemoreaubd
여덟 살 때부터 매년 앙굴렘 국제 만화제 학습 만화 부문에 출품하다 2005년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이후 파리 고블랭 영상 학교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는데 이는 그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그림 세계를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앙굴렘 국제 만화제에서 2012년 ‘젊은 재능인 상’을, 2018년에 『그리므르 연대기(La Saga de Grimr)』로 대상인 황금야수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표범이 말했다』로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하틀풀의 원숭이(Le singe de Hartlepool)』, 『하라스의 폭풍(Tempete au Haras)』, 『팡스와 세상의 주름(Penss et les plis du mond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