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처럼 존재하는 그들. 동물, 어쩌면 식물, 때로는 정물과도 같은”
두 권의 책이 아코디언 접이면으로 이어져 끝없이 되풀이되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흥미롭게 그린다.
첫 번째 책은 화가의 노트가 중심이다. 푸른색 노트를 품에 안은 한 화가가 집을 나서는 모습의 표지를 넘기면 책은 푸른 노트 안으로 들어간다. 페이지 수가 적힌 노트에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며 그리고 쓴 그림과 글이 담겼다. 언젠가부터 발견한 꼬리가 느껴지는 사람들, 그들은 사람인 것 같지만 어딘가 동물을 닮아 있었다. 모자 옆으로 털이 나 있는 귀가 튀어나와 있기도 하고, 뾰족한 이가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보지 못했지만 화가는 그들을 발견할 때면 푸른 노트에 기록하곤 했다.
노트를 덮으면 첫 번째 책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코디언 접이면에서 화가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자신의 집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이어져 집으로 공간이 바뀐다. 집에 돌아온 화가가 코트를 벗자 엄청나게 큰 푸른 꼬리가 드러난다. 화가는 하루 종일 숨겨 왔던 자신의 꼬리를 길게 늘어트린 후 천천히 빗고 잠에 든다.
아침이 되어 집을 나서기 전의 화가는 긴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첫 번째 책으로 이어지는 아코디언 접이면에 담겨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꼬리 없이 노트를 들고 집을 나서는 화가가 보이는 첫 번째 책 표지에 다다르게 된다. 화가는 다시 노트를 펼치고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책의 마지막과 처음은 끝없이 이어지며 노트와 집을 오간다. 마치 끝없이 계속되는 하루들처럼.
알아본다는 것, 나도 그러함에 대한 또 다른 고백
첫 번째 책 안 노트에 화가가 담았던 타인에 대한 관찰이 두 번째 책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고백으로 바뀐다. 화가는 꼬리가 느껴지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에 대한 느낌을 노트에 그림과 글로 기록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코트를 벗는 순간, 푸르고 긴 꼬리를 드러내며 그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순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타인을 그토록 세심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안에도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두 권의 책이 전혀 다른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첫 번째 책 노트에서 찢어져 사라진 38, 39페이지가 두 번째 책, 화가의 꿈속에서 등장한다. 그 페이지에는 무엇을, 아니 누구를 그렸길래 찢은 걸까. 깨어 있는 동안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이 꿈에서는 그럴 수 없는 걸까.
내용과 물성이 이루는 시너지: 두 책으로 나뉜 두 개의 공간과 접이면을 통한 연결
두 권의 책이 아코디언 접이면으로 이어져 끝없이 반복되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흥미롭게 그린다. 첫 번째 책의 공간은 노트다. 표지를 넘기면 독자는 페이지 번호가 찍힌 노트 안으로 들어가고,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며 그리고 쓴 기록들과 마주한다. 두 번째 책의 공간은 화가가 코트를 벗고, 꼬리를 꺼내고, 잠드는 집이다. 바깥과 안, 타인과 자신, 관찰과 고백으로 두 공간은 대비를 이루며 화가의 내면을 묘사한다. 이 대비는 종이와 서체에서도 계속된다. 노트의 공간은 거칠고 얇은 종이에 손글씨로, 집의 공간은 매끈하고 두꺼운 종이에 빈티지 타자기 글씨체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은 아코디언 접이면으로 물리적으로 이어져 끝없이 순환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이러한 구조는 반복되는 일상을 내용에 더해 물리적으로 직접 경험하게 이끈다.
이진희 작가의 작업 노트를 펼쳐보는 듯한 드로잉과 콜라주의 매력적인 어우러짐
『도토리시간』을 포함한 이진희 작가의 전작은 색연필로 쌓아 올린 밀도 높은 색면의 세계였으며, 그 안에서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반면 이번 작품은 드로잉과 콜라주를 통해 선이 전면에 드러나고, 여백이 숨을 쉰다. 형태들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채로 존재하지만 그 불완전함은 오히려 더 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선이 그어지고 모양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타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함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까? 직선이 없는 작가의 드로잉은 평안함으로 책 전체를 감싼다.
화가의 노트는 모눈종이, 줄칸, 빛바랜 종이 등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 배경지 위에 드로잉과 콜라주로 완성된다. 그 위에 담대하게 얹힌 손글씨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로 페이지 위에 공존한다. 또한 노트 위의 손글씨는 내밀한 사유가 편안하게 나열되듯 방향도 크기도 자유롭다. 특히 "사라지고 싶은 걸까"라는 문장은 거의 사라질 듯한 필압으로 희미하게 표현함으로써, 글이 이미지가 되어 작가의 의도를 한층 더 분명하게 담아낸다.
작가의 말
이 책에는 파란색 노트를 품에 안은 한 사람이 나온다. 노트 안에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며 기록한 흔적이 남아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꼬리가 느껴지는 사람들을 발견했고, 그 사람들을 관찰하며 기록한 장면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그림책을 만들기 오래전부터 누구에게나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푸른 꼬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푸르고 긴 꼬리는 타인에게 나누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만 있는 것 같은 긴 꼬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다 보면, 그 시선은 나에게서부터 타인에게로 옮겨지곤 한다. 어딘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잘못된 것 같았던 마음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때로는 위안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나의 기다란 꼬리와 화해하고 편히 잠드는 날도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꼬리와 살아가는 누군가가 자신과 닮은 타인의 꼬리를 발견하며 안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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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명륜동 고양이 스미스씨]를 명륜동 곳곳에 숨겨 두기도 했습니다. 2009년 CJ세계그림책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에 선정된 작가는 아이와 어른, 동물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