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는 매일이 힘겹다. 마치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는 것 같은 날들, 몸은 늘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그러던 어느 저녁, 길 건너 피아노 상점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이끌려 난생처음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선다. 조심스럽게 누른 하얀 건반 하나. “솔~.” 단지 한 음이었지만 ‘솔’은 솔라의 가슴으로 날아들고, 그날부터 일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보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빛을 들이는지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어린이에게는 처음 만나는 꿈의 설렘을,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나의 그랜드 피아노’를 떠올리게 한다.
‘솔’ 한 음이 날아든 저녁
오늘도 솔라는 바쁘게 일한다. 퇴근할 때면 몸은 한없이 무겁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던 솔라에게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온다. 홀린 듯 길을 건너 피아노 상점에 들어간 솔라는 처음으로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하나를 누른다. “솔~.” 단지 한 음뿐! 하지만 상점을 나온 솔라를 ‘솔’이 따라오고, 늘 보던 도시의 저녁이 그날부터 다르게 보인다. 꿈이 대단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한 음, 한 장면, 한 사람과의 만남이 어제와 똑같던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나의 그랜드 피아노』는 바로 그 작은 시작의 순간을 붙잡는다.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은 외롭지 않다
솔라의 꿈 곁에는 파도 씨가 있다. 그는 서툰 솔라에게 문을 열어 주고, 피아노 앞에 앉을 자리를 내어 주며, 작은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이 관계가 따뜻한 까닭은 그 응원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아서이다. 누군가에게 받은 마음은 어느 날 또 다른 마음이 되어 돌아간다. 꿈을 향해 가는 길에는 때때로 ‘저마다의 파도 씨’가 있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그림책은 꿈만큼이나 그 꿈을 오래 지켜 주는 관계의 힘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랜드 피아노를 정말 ‘갖는’ 방법
솔라는 그랜드 피아노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흐를수록 ‘갖는다’는 말의 뜻은 달라져간다. 좋아하고, 바라보고, 배우고, 시간을 들이는 동안 이미 그것은 삶의 일부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꼭 직업이 되거나 대단한 성취로 이어지지 않아도 좋다. 오래 마음에 품은 것, 바쁜 삶 때문에 뒤로 미뤄 둔 것, 생각만 해도 다시 마음이 뛰는 것. 어린이에게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꿈으로,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가온다.
‘모두의 마음속엔 그랜드 피아노가 하나씩 있는 걸까?’ 책을 덮고 나면 이 질문이 오래 남는다.
‘나의 그랜드 피아노는 무엇일까?’
작가의 말
글 김미라
피아노를 좋아한 소년은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이 피아노를 쳤습니다. 부모님이 들려주던 라디오 속 음악이 그의 선생님이었지요. 직장인이 된 어느 날, 퇴근길에 그랜드 피아노를 만났습니다. 설렘 반, 주저하는 마음 반으로 그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솔라’는 ‘솔’과 ‘파도 씨’를 만났습니다. 바쁜 날들을 보내다 오랜만에 피아노 상점에 갔을 때도 파도 씨는 여전히 솔라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랜드 피아노를 갖기까지는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들려주었지요. 책 속에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QR 코드로 실려 있습니다. ‘어린이 정경’의 일곱 번째 곡으로, 제목에는 ‘꿈’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솔라는 자신의 꿈을 응원해 준 파도 씨를 위해 서투르지만 진심을 담아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합니다. 『나의 그랜드 피아노』에는 꿈과 응원이 있고, 환대와 시간이 있습니다. 부디 꿈에게 시간을 주고, 시간에게 시간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저에게도 작은 꿈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실제 무대는 도쿄 히비야 역 근처의 한 악기점입니다. 언젠가는 ‘파도 씨’의 실제 모델을 만나 이 책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림 황정원
원고를 받고 주인공 솔라가 ‘솔’을 치는 장면을 처음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나의 그랜드 피아노』 그림책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솔라가 홀린 듯 발걸음을 돌리게 한 순간, 바로 ‘솔’을 만나는 순간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나의 ‘솔’은 무엇인지,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나의 꿈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 책을 만나는 분들도 잊고 지내던, 가슴 두근거리던 순간을 다시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 속 음악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그림책 밖으로 이어지는 음악. 『나의 그랜드 피아노』를 열면, 책에 실린 QR 코드를 통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이야기 속 주인공 솔라의 실제 모델이 직접 연주했다. 한 사람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다시 음악으로 독자에게 건너간다. 그림책을 읽는 경험이 눈에서 귀로, 그리고 각자의 기억과 꿈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는 동안,
우리는 분명 저마다의 그랜드 피아노에 가까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조정빈(연주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꿈을 다시 꺼냈다. 나만의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노력한다. 식물을 돌보고 주변을 관찰하고 살핀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