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상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황금야수상 수상 작가, ‘제레미 모로’의 신작!
강물에 떠내려간 동물 인형 ‘카주’를 찾아
어둑해지는 숲속으로 달려간 아이, 시도.
〈표범이 말했다〉의 제레미 모로가 그려낸 숲과 물,
그리고 사랑했던 인형들의 이야기
어느 여름날, 시도는 잠자리를 쫓아 폴짝폴짝 뛰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다람쥐 인형인 ‘카주’를 놓치고 만다. 강물에 떨어진 카주는 바위틈 사이로 떠내려가 버렸다. 해는 기울고,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카! 주!”하고 크게 불러 보아도 숲은 대답이 없다. 대신 나무들이 시커먼 짐승처럼 스르륵 몸을 움직인다. 과연 시도는 카주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밤이 무서울 때면 꼭 끌어안던 것, 어디를 가든 손에서 놓지 않던 것, 하도 끌고 다녀서 솜이 다 빠져 버린 것, 이름을 지어 주고, 말을 걸고, 잠들기 전까지 이불을 덮어 주던 것……. 누구에게나 그런 인형이 하나쯤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 그 손을 놓았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된다.
이 책은 잃어버린 인형을 찾아 숲으로 들어가는 한 아이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아이의 모험을 지켜보며 나의 오랜 친구를 떠올리는 일은 우리가 한때 무언가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돌아보는 일로 이어진다. 이 책을 통해 아주 어린 날 잠시 내 곁에 머물다 떠난 친구에게 뒤늦게나마 안부를 건네 보면 어떨까.
울지 마, 너는 천 조각이 아니야
오빠 ‘로낭’에게 시도의 다람쥐 인형 ‘카주’는 그저 천 조각일 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과 강가에 쪼그려 앉아 올챙이 연못을 만들던 로낭이었지만, 올해는 친구들과 절벽에서 다이빙을 할 정도로 자랐다. 풍덩, 물보라가 튈 때마다 시도는 그 아래에서 오빠를 올려다본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한 아이가 조금 먼저 자랐고, 다른 한 아이는 자라고 있을 뿐이다. 동생에게 다른 데 가서 놀지 않으면 그 천 조각을 물에 던져버리겠다는 로낭. 그의 말투에는 짜증만큼이나 머쓱함도 섞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역시 그 세계에 있었으니 말이다. 시도는 대꾸하지 않고 카주를 안은 채 자리를 뜬다.
“울지 마, 너는 천 조각이 아니야.” 언뜻 카주에게 속삭이는 말 같지만 정작 울고 싶은 건 시도다.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곧잘 인형에게 떠넘기고는 한다. 다이빙이 하고 싶을 때는 “카주도 내가 다이빙하면 좋겠대!”라고 말하고, 서운할 때는 인형의 눈물을 대신 닦아 준다. 그러니 오빠가 카주를 천 조각이라 부른 순간, 시도는 그 말을 인형에 대한 비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솜이 해진 인형이 어른 눈에는 낡아 보일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이름이 있고, 말도 걸 수 있는 친구다. 그리고 누구나 한때는 분명 그 차이를 안다.
동물 인형은 어디에서 왔을까
카주를 잃은 시도가 들어선 숲은 무섭다. 짙은 보랏빛 나무 기둥 사이사이에는 검은 그림자가 숨어 있고, 그 그림자마다 희미하게 빛나는 눈이 그려져 있다. 누군가를 나를 키져보는 것만 같은 그런 어둠 속이다. 시도는 그 숲으로 들어가 카주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시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만 느껴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림자들은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낸다. 늑대와 호랑이, 곰이 강가로 물을 마시러 와 다른 온순한 동물 사이를 거니는 장면에 이르게 되면 그렇게나 반짝이던 눈들이 사실 이 숲에 사는 생명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가 밤에 느끼는 두려움들은 이름을 몰라서 생기는 감정에 가깝다.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어둠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한다.
숲의 한가운데에 물의 여인이 있다. 여인의 품에 안긴 젖은 다람쥐가 에취, 에취! 하고 재채기하자 시도는 그 소리가 카주임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잠자리는 시도에게 카주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물의 여인이 아이들을 빌려주었고, 그 아이들은 우리가 무서워할까 봐 인형의 모습으로 왔다는 것이다. 이 상상은 인형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전혀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다. 인형은 우리가 가진 물건이 아니라 숲이 잠시 건네준 생명이었다는 것. 문학과 생태의 관계를 오래 연구해 온 장 크리스토프 카발랭, 그리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에 질문을 던져 온 제레미 모로가 함께 빚은 이야기답게 가장 사적인 사랑이 가장 넓은 세계와 맞닿는 순간을 보여 준다.
떠나보낼 줄 아는 사랑
카주를 다시 만났지만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시도는 눈물을 흘린다. 시도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카주를 찾았다는 기쁨, 짐승들에 대한 무서움, 카주와 함께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별 앞에서의 감정은 원래 그렇게 뒤죽박죽이다. 반가움과 두려움, 서운함이 한꺼번에 차올라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는 카주에게 “잘 있어 카주, 너는 가장 예쁘고 좋은 인형이었어”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 과거형의 인사 속에는 이제 보내 주어야 한다는 걸 아는 아이의 마음이 스며 있다.
그 곁에는 로낭이 있다. 동물 사이 둘러싸인 동생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오빠는 시도에게 당장 도망치라고 외친다. 그때, 나이 든 곰 한 마리가 남매를 위협하던 호랑이 앞을 막아선다. 로낭의 어릴 적 친구 ‘브라우니’다. 동생의 인형을 천 조각이라고 부르던 로낭 역시 한때는 인형을 끌어안고 자던 아이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그것을 다른 아이와 나누는 일도 사랑이라는 걸 로낭과 시도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인형들은 또 다른 아이를 자라게 하겠지. 그러니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여긴 인형들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또 다른 아이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한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에게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은 자란다.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jeremiemoreaubd
여덟 살 때부터 매년 앙굴렘 국제 만화제 학습 만화 부문에 출품하다 2005년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이후 파리 고블랭 영상 학교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는데 이는 그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그림 세계를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앙굴렘 국제 만화제에서 2012년 ‘젊은 재능인 상’을, 2018년에 『그리므르 연대기(La Saga de Grimr)』로 대상인 황금야수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표범이 말했다』로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하틀풀의 원숭이(Le singe de Hartlepool)』, 『하라스의 폭풍(Tempete au Haras)』, 『팡스와 세상의 주름(Penss et les plis du mond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