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책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와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가 공동 주관하는 ‘제3회 휴머니타리안 그림책상’ 수상작이다. 국제적십자운동의 핵심 이념 인도주의(Humanitarianism)는 인류애(Humanity)의 실천적 개념이다.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는 인도주의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책 콘텐츠로 전달하고자 했고, 원주시그림책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와 함께 역량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23년부터 그림책을 출간해 왔다. 올해 수상작은 산불이라는 참혹한 재난 속에서 본능적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포옹함으로써 함께 살아남은 동물들을 통해 다정한 연대와 협력의 경이로움을 그림책에 담았다.
할머니와 산골 마을에서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아가던 강아지는 어느 날 뒷숲과 마을을 덮친 산불에 놀라 정신없이 내달립니다. 이내 숲도 화염에 휩싸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 때, 쓰러진 나무에 깔린 토끼를 구하고 둘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숲속에서 위기에 직면한 청설모와 딱새, 고슴도치와 차례로 마주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재난을 맞닥뜨린 작은 존재들은 본능적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의지하며 동굴 속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마침내 아침이 밝아오고, 까맣게 타버린 숲 곳곳에 서로를 단단히 안고 품은 채 살아남은 생명이 드러납니다.
연대와 협력,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포옹의 힘
이 그림책은 무자비한 재난 앞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산불 속에서 서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보살피며 밤을 지새우는 모습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실제로 거대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평소 천적 관계인 동물들도 생존을 위해 일시적으로 공격 본능을 멈추고 같은 피난처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생태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극한의 위기 앞에서 대립하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방패 삼아 함께 버텨내는 것이 모두가 살아남는 생존 역학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함께라면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서로 간의 연결과 연대가 느슨해진 오늘, 이처럼 서로 경계를 허물고 보폭을 맞추는 동물들은 공존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밤새 진화 작업에 나선 사람들조차 까만 숲을 등지며 더 이상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돌아설 때, 숲의 가장 깊은 곳에는 서로를 단단히 보살피며 지탱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포옹’이야말로 절망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실천임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의 실천이 증명한 연대, 인도주의의 시작
작가는 ‘휴머니타리안 그림책 워크숍’에서 국제적십자운동의 창시자 앙리 뒤낭의 일화를 접했습니다. 서른한 살의 청년 기업가였던 뒤낭은 솔페리노 전투 현장에서 마주한 타인의 참혹한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의 작은 실천은 훗날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국제적십자운동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실천은 『끝없는 포옹』 속 강아지가 화염 속에서 처음 마주한 토끼에게 다가가는 다정한 본능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위기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공존의 가치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서로를 지탱하며 껴안은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깊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화면의 정교한 호흡과 완급 조절로 구현한 시각적 완성도
신인 작가의 뚝심과 치열함으로 완성된 본 작품은 장면의 긴박함을 목탄과 파스텔을 사용해 빛과 어둠, 선의 농담으로 조율했습니다.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동물들의 속도감과 숨 고르는 정적을 장면 장면 적절히 배치했습니다. 특히 나무가 불에 타고 남은 재료인 목탄과 연필을 주재료로 선택하여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의지는 재료 그 자체로 이미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주는 묵직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한 작가는 어린 생명의 실루엣을 부드러운 선으로 대비시켜 참혹한 상황 속의 생명력을 포착해 냈습니다. 나아가 장면마다 독자의 시선이 머물고 흐르는 화면의 호흡을 철저히 계산하는 한편, 이야기의 개연성을 보강하기 위해 앞뒤 면지에 그래픽 노블 형식을 도입하는 과감한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이처럼 치열하게 조율된 연출과 나직하고 시적인 원문 텍스트의 여운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작가의 말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도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청년에게서 시작된 마음이 백 년이 넘도록 이어졌듯, 이 책의 이야기가 우리 안의 그 마음을 일깨우길 바랍니다. 그렇게 깨어난 온기가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포옹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3D 디자이너로, 출판사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창작활동을 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쓰고 그린 책으로는 「대한민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리기」 시리즈 전권, 『그림일기 표현사전』, 『프랑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리기』, 『수수께끼 알고 가면 유치원 짱』,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워크북』 등이 있다. 두 딸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저자는 즐거운 그림 그리기를 공유하고자 '재미나지' 채널을 운영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