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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피플 2016519184220.jpg
  • 그림작가 마르크 샤걀
  • 글작가 화리데 칼라트바리
  • 출판사 큰나
  • 페이지
    40 쪽
  • 발행일
    2010-03-10

책 내용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 화리데 칼라트바리의 신작으로, 갈수록 의사소통이 단절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마음 속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글로 담아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아픈 아이들, 소외당한 아이들의 내면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소통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아름다운 소통으로 새롭게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 주변의 가족과 이웃, 가족 및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의 중요함을 새롭게 되새겨 보게 합니다.

이 그림책에는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꿈의 화가라고 불리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들이 가득 담겨 있어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소녀의 이야기에 맞춰 전개되는 환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그림은 아이들을 놀라운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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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보도자료

세계 속에서 우뚝 선 한국문학을 공부한 이란대사관 참사관 모르데자 솔탄푸르가 번역
그동안 우리는 외국으로 유학 가서 외국 문학을 공부하거나 국내에서 외국 문학을 공부하여 그들의 문학을 번역하여 읽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한국문학의 위상도 세계 속에서 드높아졌다. 보다 아름답고 정확한 우리말로 외국의 정서를 소개하기 위해 한글과 한국문학을 배워 자신들의 문학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깊은 생각과 놀라운 상상력은 물론 행간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까지 찾아내어 아름다운 우리말로 충실하게 번역해 내어 세계 속에서 우리 문학의 위상이 얼마나 드높아졌는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놀라운 영적 시상으로 동화를 쓰는 칼라트바리가 소외당한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이야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 화리데 칼라트바리의 신작이다. 놀라운 상상력이 가득한 이야기를 많이 써온 작가는 갈수록 의사소통이 단절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마음속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글로 담아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아픈 아이들, 소외당한 아이들의 내면을 돌아보게 해주고 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소통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아름다운 소통으로 새롭게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주변의 가족과 이웃, 가족 및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의 중요함을 새롭게 되새겨 보게 한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마르크 샤갈의 환상적인 그림을 콜라쥬 기법으로 담아낸 새로운 그림
이 그림책에는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꿈의 화가라고 불리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들이 가득 담겨 있어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소녀의 이야기에 맞춰 전개되는 환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그림은 아이들을 놀라운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미술관을 자주 찾게 되는 요즘 아이들과 함께 꿈의 세계를 표현해낸 아름다운 그림과 속 깊은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림책은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소개

러시아의 비테프스크 출생.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드파리 최대의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910년 파리로 나와 A.모딜리아니와 F.레제 등을 배출한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기법을 익혔다. 1911년 앙데팡당전(展)에 첫 출품, 괴이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1911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후 그해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으나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잇달아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모국에 머물면서 미술단체의 요직을 맡았다. 고향에 미술학교를 열고, 1919년 모스크바의 국립유대극장의 벽화장식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맞지 않아 1922년 베를린, 1923년에는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부터는 유화 외에도 화상(畵商) 폴라즈의 의뢰에 따라 많은 판화를 제작하여 에콜 드 파리의 유력한 작가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고 환상적인 작풍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가 점차 격화되자 1941년 도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서 지냈다. 1947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50년부터는 남프랑스의 방스에 영주의 터전을 잡았다.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전(展)에서 판화상을 받았으며, 유화·판화·벽화(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벽화, 파리오페라극장의 천장화 등)·스테인드 글라스·조각·도기(陶器) 제작을 비롯하여 무대 장식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초기 작풍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슬라브의 환상감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개성을 강하게 풍겼다.

소박한 동화의 세계나 고향의 생활, 하늘을 나는 연인들이란 주제를 즐겨 다루었고,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작품으로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바이올린 연주자》 《기도하고 있는 유대인》 《에펠탑 앞의 신랑과 신부》 《서커스》 등과, 자서전에 《나의 인생 Ma Vie》(196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