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도자료
작가의 말
1504년 9월 다비드 상을 공개한지 한 달 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 상에 대해 추가 작업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비드의 새총(투석기)과 그의 다리 뒤편에 조각되어있던 나무그루터기에 도금을 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다비드 상에 금박으로 된 왕관도 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나뭇잎 모양의 구리벨트를 둘렀다고 합니다.
피렌체 시민들은 이 다비드가 피렌체에 늘 행운을 가져다주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다비드 상을 세워 둔 위치가 썩 좋은 곳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다비드 상에 번개가 내리쳐 조각상의 받침대가 파손되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누군가가 다비드 상 가까이 있는 건물에서 창문을 열더니 다비드의 머리 바로 위로 벤치를 집어던졌습니다. 다비드의 왼팔이 그 벤치에 맞아 세 조각으로 깨져버렸습니다. 마침 미켈란젤로의 친구가 그 파편들을 주워, 후일 조각상은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이 거인은 또 다른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늘 광장 한복판에 서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해마다 비와 바람과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새똥 역시.
수세기가 지난 뒤, 누군가 이 조각상이 너무 더러워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리석에 난 흠집과 파손이었습니다. 다비드는 계속 마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결책은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조각상을 깨끗이 청소해 안전한 실내로 옮겨 보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 시민들에게 다비드가 없는 광장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장소에는 복제품을 세웠습니다.
이제 다비드 상이 태어난 지 5백년이 넘었습니다. 그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각상의 장식품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다비드는 그가 미켈란젤로의 손을 떠났을 당시의 모습인 것입니다. - 제인 서트클립
화가의 말
나는 역사에 흥미가 있어 옛날 일을 조사하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이 그림책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스케치를 모사하거나 당시 유행하던 모양을 넣거나 해서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마음을 썼습니다.
의복이나 풍경을 그리기 위하여 오래된 그림을 참고로 했으나, 다비드 상이 서 있는 광장 주변의 건물은 꽤 달라져서 자료를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건, 미켈란젤로의 작업장입니다. 물론 사진도 없고, 도면이나 그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미켈란젤로가 어떻게 돌을 파냈을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약간의 추측을 더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를 조각한 대리석은 결코 가장 좋은 대리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재료를 완벽하게 살린 기술, 도전하는 의지, 남다른 노력 그리고 그 돌이 다비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힘 같은 것들이 함께 하나의 조각에 쏟아 부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 다비드 상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이러한 배경 이야기를 알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한층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미켈란젤로가 보다 가까이 느껴지도록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 존 셸리